2017/09/17 15:10

어제 나라는 여자

어제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술을 마셨다.  집에 갈 생각하지 않고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며 맥주는 마시는 일은 나에게 극히 드문 일이라 
오랜만에 그런 시간을 가지니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어제의 그 자리는 소개팅이었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아서 그 사람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며 
집 근처에서 가볍게 맥주는 마시게 된 것이었다. 

그 술집에는 얼마 전 아예 안보기로 결심해버린 그와 작년 크리스마스때 한 번 갔었다. 나는 신입사원이어서 아직 얼굴이 맛가기 전이었고
그 역시 아직 뽀송뽀송했었다. 약간의 맥주는 마시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보통의 평범한 연인들처럼 시간을 보냈었다. 그 다음날에는 
아침부터 그를 만나 차를 타고 하루종일 강화도를 돌아 다녔다. 강화도에서 무작정 달리다가 들어간 산에서 길 끝을 만났고 다시 돌아나오기 전 잠시 내려서 바람을 쐬었었다. 빛 한 점 없는 숲 속 차가운 바람 속에서  우리는 서로 꼭 안고 있었다. 그 날 우리는 처음으로 플레이 리스트를 공유 했었고 나는 그가 신해철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 술집에 가서는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고 더 이상 슬프지도 미련도 없었지만 아직 얼굴이 탱탱하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술을 마시며 흐릿해진 머리로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더 이상 쓰지 않는 멍청이라고 생각하며, 백퍼센트 나는 이걸 써야지 생각하고 안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마음이 들지 않는 문장이나마 쓰고 있다) 더 이상 가버린 시간들은 오지 않는다.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인 그 사람과 나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 중 극히 일부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사랑과의 추억과 슬픔등에 대해서는 우리가 연인사이가 된다면  말할 수 없겠지. 그래서 서로에게 사랑은 서로밖에 없는, 서로가 첫사랑인 사람들은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춰야 할 것들도, 포장해야할 것들도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을테니깐. 내가 어제 처음 만난 그에게 이야기한 몇 몇의 에피소드들은 그와의 에피소드이니깐. 

매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나는 그와 처음 만났던 장소를 지나친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난 그와 나는 오프닝 파티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김밥천국에서 라면과 김밥까지 먹고 헤어졌다. 헤어지던 참에 그는 내게 머뭇거렸지만 내 연락처를 물어보지는 않았고, SNS를 통해 연락을 해왔었다. 그렇게 만나게 되어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며 3년의 시간을 끌었지만 이제는 정말 끝이 나버렸고, 그래서 때때로 슬플 때가 있다. 그는 내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나도 물론 그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몸과 마음을 나눈 연인이었기에 찰나의 행복한 순간은 있었다. 가령 안경 쓴 내 모습을 보고 볼에 뽀뽀를 하던 순간,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내 입에 넣어주던 순간, 거리를 걷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 순간. 그러나 찰나의 순간만으로 그를 만나기에 그와 나는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결정적으로 사랑이 없어져버렸다.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간단히 정리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나는 거기서 끝이났고 나는 이제 새로운 삶을 향해 한발짝 나아갈 것이다. 어제 그 술집에서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고 신해철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내 마음속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신해철 노래는 그 말고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깐 굳이 슬프게 신해철 노래를 들으며 그를 추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것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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