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2 23:37

김수자 미술관


내가 김수자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3학년때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에서다.
그때 당시 전시 제목은 <earth-water-fire-air>로 자연을 그대로 전시장에 넘실넘실 옮겨놨었고,  좀 충격받고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도 보았고, 뭐 국내에서 전시하신다고 하면 대부분 찾아갔었던 것 같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현대자동차 시리즈로 김수자 전이 열리고 있다. 나는 당연히 보러 갔다.
이 전시는 작가가 마음-이라는 소재에 집중해서 관람객들에게 편안하고 친절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마음의 기하학>은 저렇게 찰흙을 동그랗게 굴리는 작품이다. 원래는 찰흙이 하나도 없었는데 관람객들이 만든 찰흙덩어리가 저렇게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입장시 줄을 서서 입장하고 찰흙을 조금 떼서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굴리고, 완성된 찰흙은 테이블 위에 두고 나오면 된다.
작가는 찰흙을 굴리면서 모난 우리의 마음을 동그랗게 굴려보세요-하고 말하는 듯 하다. 
조금 더 미학적?으로 들어가보자면 음 비물질의 물질화랄까. 결코 마음은 볼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만들어 보며 마음을 치유하자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매우 친절하고 다정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또 <마음의 기하학> 다음에 있었던 작가의 요가매트가 작품이었던, <몸의 기하학> 역시 굉장히 좋았다.
나도 요가를 좋아하고, 했었고,언제든 하고싶은 사람으로서 몸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며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연결되어 있어서 몸은 그것을 보여준다는 이론에 동의한다.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순 있어도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놀랄 때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고, 슬플 때는 눈물이 난다. 
저렇게 요가매트가 닳을 정도로 요가를 하는 작가는 언제나 마음의 평정과 균형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작가는 1957년생으로 이제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 자신의 신체를 되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왠지 작가 무라카미하루키가 생각났다. 하루키는 젊었을 때는 판타지 요소가 많은- 결론을 알 수 없는 그러나 언제나 진실만을 알려주는 소설을 써왔다.
삶이란 어차피 죽음으로서 지는 게임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없지않냐는. 
그런 하루키가 2014년 발표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갑자기 약간 친절해졌고 희망차졌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하루키의 친절함에 결국 정직했던 하루키도 나이가 들고보니 진실이란 희망,사랑 이런것이구나를 
알려주고 있구나 싶었고 그래서 따뜻한 소설이었는데 김수자의 <마음의 기하학>도 그런 느낌이었다. 
희망과 사랑을 알려주는, 그래서 다 같이 행복해지자는 그런. 
어쨌든 해피엔딩이 좋으거니깐. 그리고 모두가 염원하는 것은 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모두의 해피엔딩이니깐.
따뜻하고 다정한 전시. 


덧글

  • 개구리 2016/10/03 09:44 # 답글

    저도 재미있게 참여한 전시랍니다. 그런데 종종 마음에 안드는 (?) 원이 있으면 서 있는 관계자 분들이 오셔서 다시 원을 만드시더라고요 (...) 그 모습이 무언가 오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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